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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대몽항쟁

역사상식 (용어)

삼별초 대몽항쟁

 

 

 

 

고려 정벌 기회를 엿보던 몽골은 고려에 파견한 사신

저고여가 국경 지대에서 살해되자,

고종 때인 1231년에 제1차 침입을 합니다.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군은 개경에까지 이르렀으나

화친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권력을 쥐고 있던 무신 정권의 최우는 몽골이 무리한

조공을 요고해 오자, 1232년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대항을 하였습니다.

 

이에 몽골은 제2차 침입을 해 왔고,

이렇게 약40년 동안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싸우게 됩니다.

 

 

 

무신 정권은 개경으로 환도하라는 몽골의 압력에

끝까지 버티며 강화도에서 대몽 항쟁을 지휘했으나

마침내 1258년 최의가 살해됨으로써 최씨 무신 정권이

끝나게 됩니다.

 

이후 1270년에 고려 조정은 몽골과 강화도 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배중손 지휘 아래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몽골에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난을 일으켰습니다.

 

 

원래 삼별초는 최씨 정권이 치안 유지를 위하여 창설한

야별초란 부대였습니다.

이들이 늘어나자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고

몽골과 싸우다 포로로 잡힌 뒤 탈출한 병사들로

조직된 신의군까지 합쳐져 삼별초가 된 것 입니다.

 

 

삼별초는 근거지를 진도로 옮겨 대몽 항쟁을 펼쳤으나

여몽 연합군과 일전을 벌이다 배중손이 전사하고

패하고 맙니다.

 

진도 함락 후에는 제주도로 옮겨 김통정의 지휘로

끝까지 항쟁하였으나 결국 1273년에 패하여 삼별초의

난은 진압이 됩니다.

 

 

 

* 국호를 "원"으로 정한 몽골은 이후 개경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였고, 화주에 설치했던

쌍성총관부로 100년간이나 철령 이북의 당을 점령하였다.

 

* 원은 고려의 군사를 징발해 연합군으로 2차례 일본 원정을

시도했으나 태풍으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