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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 분열 분할 베르됭 조약

역사상식 (용어)

프랑크 왕국 분열 분할 베르됭 조약

 

 

 

 

게르만족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뒤

서유럽 일대에 여러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중에서 프랑크족의 클로비스가 481년에 갈리아 지방에

세운 크랑크 왕국은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뒤

로마 교황의 지지를 얻으며 게르만 통일 국가로 발전합니다.

 

 

 

 

800년에는 카롤루스 대제 (샤를마뉴)가 옛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여 서유럽을 통일하자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제국 황제로 임명됩니다.

하지만 카롤루스 대제의 뒤를 이은 루트비히 1세(루이1세)

사후 내분으로 프랑크 왕국은 분열 됩니다.

 

 

 

 

 

 

생전에 루트비히 1세는 세 아들에게 왕국을 분할했는데

그가 죽고 이들이 싸우자 놀란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내란 종경을 위하여 중재에 나섰습니다.

결국 세 아들은 843년,프랑크 왕국을 셋으로 나누기로

베르됭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크 왕국은 동프랑크,중프랑크,서프랑크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러다 중프랑크의 로타르2세가 죽자,

870년에 동프랑크와 서프랑크는 메르센 조약을 맺고

중프랑크를 분할하여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렇게 프랑크 왕국은 동프랑크,중프랑크,서프랑크로

분열되어 오늘날 독일,이탈리아,프랑스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 카롤루스 대제가 통일 국가를 이룩하고

교육과 문예 진흥에 힘쓴 결과로 로마 문화와 크리스트교,

게르만 전통을 융합한 새로운 서유럽 문화권이

탄생하게 됩니다.

 

 

*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 왕조를 연 피핀은 롬바르드 왕국을

토벌한 뒤 라벤나 지역을 교황에게 헌납했는데,

이것이 로마 교황령의 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