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크리스트교의 공인 밀라노 칙령 이란

역사상식 (용어)

크리스트교의 공인 밀라노 칙령 이란

 

 

 

 

바울로 (바울)에 의해 예술의 가르침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 크리스트교는 전파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배층에 의해 탄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로마는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크리스트교도들을 가두거나 죽여 3세기부터는

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박해는 주로 재판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화형,십자가형,참수형,맹수와의 격투,광산노동 등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박해에도 불구하고 상류층까지 널리

전파되자 313년 , 로마를 공동 통치하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리키니우스 황제와 밀리노에서 만나

회담을 가졌습니다.

두 사람은 회의 끝에 크리스트교를 공인한다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밀라노 칙령 이후 크리스트교 신앙의 자유는 물론

몰수되었던 교회의 재산도 모두 반환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리키니우스가 크리스트교도들을

다시 작해하자 324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리키니우스와 전쟁을 벌여 승리합니다.

그리고 성직자의 공역을 면제해 주고, 민사 소송 재판권과

노예 해방의 권리 등을 주었습니다.

 

 

 

 

* 392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크리스트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파를 이단으로 쫓자내고 예수의 신성을 내세운

아타나시오스의 삼위 일체설을 정통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