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춘사 나운규 아리랑

인물상식

춘사 나운규 아리랑

 

 

 

한국 영화계의 개척자인 나운규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하였고, 호는 춘사랍니다.

한국 영화계의 선구자였으며

항일 독립투사로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조국과 영화에

바쳤답니다.

 

회령의 신흥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중국 간도의 명동 중학을 다니던 중에

3.1 운동에 참가하였고,

일제 탄압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러시아

백군을 거쳐 1920년 홍범도가

지도하는 독립군으로 들어가 활동하였답니다.

 

 

 

 

 

1923년 신극당 예림회의 배우가 되어 북간도

일대에서 공연을 하였답니다.

그다음해인 1924년 부산의 조선 키네마에 들어가

운영전에 출연하였고, 그때 맺은 영화의

인연으로 1926년엔 아리랑의 감독 및

주연으로 활동했답니다.

 

1927년 나운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1929년엔 한국 최초의 문예 영화라 할 수 있는

벙어리 삼룡이를 제작했답니다.

 

 

1936년 이후에도 임자없는 나룻배 등 여러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거나 감독 하였답니다.

특히 1936년 아리랑 제3편을 제작 하면서

녹음 장치에 성공하여 한국의

유성 영화 시대를 열었답니다.

 

특히 항일 영화를 만들어 민족의 혼을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 건국 훈장을 받았답니다.